[중앙 칼럼] 피노키오처럼 코가 긴 주류언론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논란으로 빈축을 사고 있는 디즈니가 공교롭게도 최근 실사판으로 리메이크한 ‘피노키오’를 선보였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를 보니 문득 워싱턴포스트(WP)지가 떠오른다. WP는 지난 2008년부터 ‘팩트 체크(fact check)’ 제도를 도입했다. 특정 주장, 발언 등에 대해 사실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WP는 검증 과정에서 피노키오 아이콘을 이용했다. 피노키오 아이콘의 개수는 곧 과장, 거짓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러한 WP는 피노키오 못지않게 코가 길다. 일례로 지난 2020년 당시 고교생이었던 닉 샌드먼이 트럼프의 슬로건(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이 쓰인 빨간 모자를 쓰고 웃음을 띤 채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노려보는 사진이 인종차별 문제로 확산했다. 이때 WP를 비롯한 CNN, ABC 등은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트럼프 지지 세력에 대한 비난 여론을 주도했다. 이후 영상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알고 보니 모욕을 당한 건 오히려 빨간 모자의 샌드먼이었다. 나중에 샌드먼은 주류 언론들을 상대로 무려 2억5000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들의 길어진 코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WP, CNN 등은 군말 없이 오보에 대한 책임을 인정, 합의금을 지급했다. 한번 길어진 코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지난 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갑자기 “트럼프와 공화당이 미국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의 주장은 차치하고 이날 특이했던 건 배경이다. 연설장 배경색은 이례적으로 어두컴컴한 가운데 새빨간 핏빛이었다. 이를 두고 ‘섬뜩하다’ ‘지옥을 연상케 한다’ ‘선동적이다’ ‘구소련 같다’ 등 부정적 여론이 일었다. 새빨간 배경이 낳은 역효과를 CNN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타 방송사와 달리 CNN 뉴스에서는 연설장 배경이 핏빛이 아닌 눈에 띌 정도로 완화된 핑크색이었다. 그러자 CNN은 곧바로 배경색을 조작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코가 길어질 대로 길어진 주류언론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ABC뉴스는 지난 7월 19일 ‘방금 들어온 소식(Just In)’이라며 속보를 전했다.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와 일한 오마르 의원이 대법원 앞에서 낙태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는 뉴스였다. 그러면서 사진을 함께 공개했는데 경찰이 AOC와 오마르를 연행해가는 장면이었다. 이 사진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분노 지수를 끌어올렸다. AOC와 오마르가 두 팔을 뒤로하고 있어 수갑이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경찰이 강제로 수갑을 채운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 주류언론들은 ABC가 보도한 이 장면을 그대로 받아 속보로 전했다. 물론 이날 AOC와 오마르에게는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이들이 수갑을 찬 것처럼 연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주류언론들은 슬쩍 보도 방향을 틀었다. ‘정치적 쇼’라는 비난 여론에 맞서 오히려 팩트 체크를 들이밀며 ‘체포된 건 사실’ ‘일종의 표현의 자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퍼포먼스’라며 논점을 흐렸다. 코가 계속 길어지면 도저히 숨길 수가 없다. 거짓의 속성이 그렇다. 주류언론의 길어진 코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딱 하나다. 편파, 편향, 오도를 멈추고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언론은 독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걸 자꾸 망각하면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피노키오 주류언론 피노키오 아이콘 연설장 배경색 비난 여론